의대입시에서 대기자 명단에 올랐다는 의미는 상당히 긍정적이며 합격의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반복적으로 알린 바가 있다. 최근에 한 학부모가 질문한 구체적인 내용과 이에 대한 필자의 답글을 공개하니 유사한 입장에 처한 가정에 도움이 되기 바란다.
“안녕하세요. 남 선생님. 저는 홍 길동이라고 합니다. 우연찮게 인터넷에서 남 선생님의 의대관련 칼럼을 보고 용기를 내어 문의를 드리고자 이메일을 적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한국에 나와 있어서 직접 찾아 뵙지 못하는 점 양해해 주십시요. 제 아들 관련입니다. 현재 xx 대학 졸업반이고, 의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고민되는 부분이 현재 콜롬비아, NYU, UC샌디애고, 와슈, 피트버그 등등에 대기자로 올라가 있는데 이 상태로 그냥 4월, 5월까지 막연히 기다려야 하는건지 아니면 뭔가 학교측에 적극적인 의지(선택해주면 꼭 입학하겠다)를 피력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한다면 어떤 방식(이메일 또는 전화 또는 우편)으로 어떻게 표명해야 하는지도 궁금하고요. ‘대기자명단에서 풀어주면 꼭 입학하겠다’라는 이런 의사표현이 학교들 간에 정보가 공유되면 각 학교가 다 알고 있어서 대기자명단에 올라가 있는 모든 학교에 이런 의사표현을 하게 되면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또 이야기를 들어보니까Binding이라게 있어서 대기자명단에 올라간 여러 의대 중에서 한 학교를 선택해서 간절한 의지를 표명하는게 있는 것 같은데 그럴 때 특정학교를 선택하려면 무얼 기준으로 그 학교를 선택하는지도 모르겠네요. 본인이 대기자 순번이 몇 번째 인지도 모르고, 그 학교들이 대기자에서 어느정도 풀리는 지 등등 기초정보도 없는데요. 좀 두서없이 여쭈어 보아서 죄송합니다. 자식의 인생 진로가 걸려있다 보니 이런 식으로 무례(?)하게 이메일을 보내서 죄송합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위의 질문내용에서 학생이 재학 중인 명문대학 이름과 학부모의 성함을 임의로 가린 것을 제외하고는 전문 그대로 소개했고 이 문의를 받은 시기는 3월 21일 이었던 점을 참고하며 필자가 제공한 아래의 답을 참고하기 바란다.
“홍 길동 님, 자녀의 인생이 달린 문제이니 온 신경이 쓰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무례한 일 하신 것 없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하고 있는 공부 마저 잘 마치고, 하고 있는 봉사나 연구도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Letter of Interest라는 편지는 “You are still one of my top choices.”라는 표현을 쓰며 해당 학교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고, Letter of Intent이라는 편지는 “You are the one.”이라는 표현처럼 해당 학교에서 불러주면 무조건 입학하겠다는 법적효력은 없지만 윤리적 책임을 갖는 binding 아닌 binding에 관한 의사표현을 하는 겁니다. Letter of Interest는 꼭 가기 싫은 학교 외에는 모두 보내라고 하시면 되고, Letter of Intent는 정말로 가고 싶은 그 학교 한군데에만 보내게 하십시오. 마치 대학입시에서 Early Decision으로 원서내는 마음이면 되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꼭 하버드 대학이 아니더라도 컬럼비아 대학을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컬럼비아에 ED로 지원해서 합격하면 다니듯이 꼭 좋은 의대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마음에 들고 현실적으로 본인이 그곳에서 잘 할 수 있는 의대를 신중히 고르라고 하십시오. 제가 학생을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여기 까지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의 한계이니 양해 바랍니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필자의 답글에서 볼 수 있듯이 대기자 명단에 오른 학생이 의대에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며 이 내용은 작년 이맘때도 전달한 바가 있다. 하지만 학부모의 질문내용 전문을 소개하며 이 내용을 다시 강조하는 이유는 급한 마음에 대기자로 올라 있는 모든 의대들에 신사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질문에서 “Binding”이란 표현은 구속력이 있는 의사표시에 관한 것이었고, 그 답이 Letter of Intent라고 했는데 이를 모든 학교에 보내는 것이 바로 신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마치 한 남자가 여러 여자에게 동시에 청혼을 하는 보기 흉하고 끔찍한 일이다. 4월말이면 모든 의대 합격생들이 한 학교만 선택하는 순간이며 이 때는 각 의대가 합격생과 대기자 학생들의 명단을 공유하게 된다. 행정상의 편리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바로 위에서 소개한 비신사적인 학생들을 추려 내기 위한 묵시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의대입시에서 대기자 명단에 올랐다는 의미는 그 학생이 상당히 열심히 살아왔고 해당 의대에서도 그 학생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매력적인 학생들이 너무 많다 보니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하기 위해 최종결정을 보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 학생이 해야 할 일은 계속해서 프리메드 학생으로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세상이 공정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레지던시 매칭보다는 주변의 영향력에 덜 휘둘리는 것이 의대입시이다. 아직은 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이니 주변의 영향력이라고 표현한 부모나 멘토의 입김이 학생을 선발하는 의대입시에 미치는 영향력이 취업과정으로도 볼 수 있는 레지던시 매칭 과정에 미치는 영향력보다는 훨씬 덜하다는 의미이다. 대다수의 한인학생들의 경우에 부모가 의대교수가 아니라는 약점을 갖고 있지만 마음이 급하다고 정도를 벗어나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여서는 절대로 안되겠다.
남 경윤 / 의대 진학 전문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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