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사무실에서 만난 A양은 한국에서 고교시절부터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뉴욕시내에 소재한 명문 사립대학생이다. 필자가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의대진학 세미나에 한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는 부모와 함께 참석하여 열심히 메모하며 듣더니 다음 날 제공되는 무료상담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필자에게 질문한 내용이 바로 “왜 미국 의대는 봉사정신을 제일 중요한 덕목이라고 선생님은 반복적으로 강조하나요? 제 친구들 중에는 봉사경험이 없이도 성적관리를 잘 해서 명문 의대에 진학했거든요.” 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의사라는 부모들도 아무 말없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학생이 들은 대답은 “의사가 되고자 하는 이유를 다시 점검해보게.”라는 필자의 짧막한 한 마디 뿐이었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읽어보라는 말을 추가로 건네주었다. 놀랍게도 한국에서 의사라는 A양의 부친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지 않고 의사가 되었단다. 자신이 다녔던 한국의 의대는 이 선서를 의대 졸업식에서 하나 자신은 졸업 이전에 인턴으로서의 근무가 시작되어 선서를 할 기회를 놓쳤단다. 물론 선서는 요식행위로 볼 수도 있으므로 했고 안 했고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기 자녀가 의사라는 직업과 봉사정신의 개연성에 대해 의대진학 전문가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그 순간, 그 분위기에서 “나도 의사지만 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던 그 의사 아빠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상상이 가능하시리라고 믿는다. 필자가 단언하건데 A양이 지금 상태의 마음가짐으로 미국에서 의대에 진학하는 일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 이외에도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았으나, 바쁜 상담일정 속에서 필자가 이런 학생에게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지 않았던 것을 인정한다. 환자중심의 사고방식이 없는 학생을 의대에 진학시키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발동된 것도 사실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의대에 진학하기를 원하는 학생들 중에는 금전적인 부담으로 필자의 도움을 받지 못 하는 학생들도 있는데, 그들을 무료로 돕는 것은 세미나에 참석하게 해서 다음 날 최대한의 정보를 주는데서 그친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더 큰 배려는 A양과 같이 환자중심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않은 학생을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 의대진학 컨실팅 프로그램에 가입을 받아주어 요령을 가르쳐서 의대에 진학시키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나마 꼭 의사가 되어야 우리 모두의 삶에 도움이 될 학생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돕는 일이라고도 믿고 있다.
A양이 의대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이유는 어려서 부터 다른 어떤 것보다 공부가 제일 쉬웠고, 그중에도 과학과목들이 더 성적이 좋았으며, 안정된 고소득이 보장되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찾고있기 때문이란다. A양의 부친도 같은 이유에서 의대진학을 권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생 자녀를 키우는 필자도 같은 아빠로서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자녀가 안정된 고소득을 올리면서 존경받고 살기를 원치 않는 부모가 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는가? A양의 생각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철든 학생이라고 칭찬해줄 수도 있는 일이다. 직업선텍의 기준으로는 기본적으로 맞는 접근법이다. 본인의 능력을 스스로 분석하고, 인생의 목표를 순위화시켜 최종목표를 결정하는 절차로서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스무살인 학생에게는 그런 접근법 외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좀 더 나이가 들면 대부분이 누리지 못 하는 특권은 바로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순간이 언제인지를 직업선택의 기준에 추가시키자는 것이다. 아울러 내가 가장 하기 싫은 것들은 무엇인지도 함께 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대학에 다니는 스무살 학생이 아니면 행복한 순간이나 열정 등의 단어는 직업선택시에 그리 많은 영향을 주지 못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발목을 잡는 경우가 대부분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부모가 경제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대학졸업 후 3년만 지나도 특별한 방향을 잡지 못 하는 자녀를 고운 눈으로 바라보는 부모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도 딸을 키우며 시집이나 잘 가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부모는 물론 예외가 되겠다.
어쨌든 환자를 대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싫다는 A양을 받아줄 미국내 의대는 없다. 의대진학을 바라는 모든 학생에게 의료봉사가 즐겁고 보람있었냐고 묻고 싶다.
남 경윤 / 의대진학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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